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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오마이뉴스]"우리는 의열단이 꿈꿨던 나라를 얼마나 이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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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1-12 17:59 조회7,8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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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 공연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 내리는 비는 그냥 내리는 비가 아니다. 지난 100년 의열단 단원들이 흘렸던 피가 비가 되어 내리고 있다."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10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의열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안 위원장의 말처럼 의열단 기념식은 이날 오후 6시 시작과 동시에 폭우가 쏟아졌다. 행사 시작 후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던 시민들도 결국 30분 정도가 지나자 비를 덜 맞는 임시 천막 등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그런데도 행사장의 열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포문은 김원웅 광복회장이 열었다.

"김원봉, 윤세주, 신채호, 유자명, 김성숙, 김산, 이육사..." 


김 회장은 격정적인 어조로 의열단 출신 의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했다.

"김원봉, 윤세주, 신채호, 유자명, 김성숙, 김산, 이육사, 김지섭, 김상옥, 김익상, 나석주, 최수봉, 박재혁, 박열...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수많은 의열단 단원들"
  
김 회장은 "일제가 가장 무서워했던 조직인 의열단 단원들은 목숨을 버려야 하는 거사를 앞두고 서로 나서겠다고 추첨까지 했다"면서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의열단이 꿈꿨던 나라를 얼마나 이뤘냐"라고 일갈했다. 


"일본에 빌붙어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이들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이 됐다. 천황의 만수무강을 빌며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행복'이라는 사설을 쓴 언론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언론사가 됐다. 이런 나라에서 (의열단이) 애국의 대상이 될 수 있겠나?"
 

김 회장은 "의열단 100주년이 되는 오늘 의열단의 업적을 기리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반민족기득권세력의 저항을 극복해 2020년에는 의회권력을 찾아오고, 언론권력과 문화권력, 경제 권력을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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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열단 시절 김원봉. 우측 끝이 약산 김원봉이다.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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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봉.

 ⓒ 위키백과


1919년 11월 10일 중국 지린시에서 창립한 의열단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했던 무장단체였다. 스물 한 살이었던 약산 김원봉을 필두로 함께 모인 10여 명의 조선 청년들은 "천하에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한다"라는 뜻을 가진 '의열단'을 창립했다. 이후로 의열단은 공식적으로 34차례나 의거를 일으켜 조선 민중의 희망이 됐다. 이십 대에 불과하던 의백 약산 김원봉은 지금 기준으로 320억 원에 달하는 현상금이 걸린 인물이 됐다.

"의열단은 타인을 위해 의를 실천하던 사람들"

앞서 9일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은 서울 성공회대에서 열린 의열단약산김원봉장군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해 "의열단이 추구한 '의'는 자신을 위해 행동하지 않음을 뜻한다"면서 "이들은 굳이 안 해도 되는데 타인과 조국을 위해 '그래도 해야 겠다'라는 생각으로 행동하고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열단원들이었다"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전 선생은 "당시 이천년 동포 전체가 일본에 의해 희생자가 됐지만 모든 민중이 싸웠던 건 아니었다"면서 "실제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운 분들은 적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을 들고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이 바로 의열단이다. 이들을 이제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이 부끄럽고 통탄스러운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의 지적처럼 10일 열린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 행사도 반성과 통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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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는 비가 오는 가운데 "의열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좌측부터 김원웅 광복회장, 함세웅 신부, 채수창 무후광복군 기념사업회 회장.

ⓒ 김종훈


의열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함세웅 신부는 비가 오는 상황을 고려한 듯 "100년 전 우리 독립군 선조들이 목숨 바치며 당한 고통을 오늘 이 비로 다시 태어나라는 세례의 의미가 있다"면서 "오늘 비를 맞으며 새로운 100년을 여는 현장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함 신부는 이내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에 애국가를 4절이나 부른 것에는 격정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가슴이 아프다. 안중근 의사와 의열단원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통탄할까. 일본과 나치에 부역한 작곡가가 만든 애국가를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에서 불렀다. 너무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다. 의열단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것부터 바꾸는 일이다."
 

1935년께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뒤 본격적으로 친일행보를 걸었다. 대표적인 것이 1942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창설 1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만주환상곡`을 만들어 지휘한 것, `만주환상곡`은 일본과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영광을 기리고, 나치와 무솔리니의 건승을 비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안익태는 앞서 1938년 `에텐라쿠`라는 일왕 찬양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애국가 작곡가로 인정받아 광복 후 대한민국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던 안익태는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이날 의열단 100주년 기념식 연단에 오른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우리의 광복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면서 "바로 의열단 같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투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의열단원과 순국선열에 머리를 숙인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처장은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우리에게 다가온 난관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만들어지도록 지혜를 모으겠다. 국민통합과 새로운 보훈 문화 확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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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는 비가 오는 가운데 "의열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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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는 비가 오는 가운데 "의열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무대에 오른 의열단 후손들.

ⓒ 김종훈


극단 <밀양>, 뮤지컬 <의열단 아리앙> 일부 선보여

한편 이날 의열단 100주 기념식은 의열단 의백 약산 김원봉의 고향 밀양에서 극단 <밀양>팀이 올라와 뮤지컬 <의열단 아리랑>의 일부를 선보이며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2008년 창단 이후 약산 김원봉을 비롯해 석정 윤세주 등 의열단원들의 공연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기념식 말미에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무대에 올라 "(의열단) 님들의 거사 때마다 사시나무였던 현해탄 왜구와 토착왜구들의 역천이 여전하지만 청천에 먹구름 낀다고 샛별이 사라지겠냐"면서 "100년의 그날 맞은 오늘 순정한 마음을 담아 행동을 다진다. 의열단 님들이여 영원하소서. 의열단 님들이여 부활하소서.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징벌에 함께 하소서"라고 의열단을 추모하며 헌시를 낭독했다.

행사가 끝나자 무정하게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출처: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8563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